차가 없는 생활은 너무 끔찍했다. 내 지난 학기는 미각에 폭행을 행사하는 나날이었고, 나는 더 이상 견디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은? 너무 행복하다. 진짜 살것 같다. 사람 사는게 이거구나 싶다.
아침 9시부터 수업이 있는 날은 7시 40분쯤에 눈을 뜬다. 사실 잘 못 일어나서 알람을 맞춰둔 핸드폰은 책상 위에 있다. 짜증과 귀찮음을 무릎쓰고 비척비척 몸을 세워 책상까지 가서 알람을 끄고, 3분 가량 책상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꾸벅 꾸벅 조금 졸아 준다(좌식 책상이기 때문에). 그리고 정신이 좀 들면 전기 포트 스위치를 켠다. 물은 지난 밤에 넣어 두었다.
물이 끓는 동안 세수 한다. 스킨을 바르고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그릇에 따른다. 씨리얼을 한 줌 꺼내서 우유담긴 그릇에 넣고 몇 술 뜬다. 드리퍼에 종이 필터를 올리고, 지난 밤 갈아둔 커피를 넣는다. 커피 뜸 들이는 동안 씨리얼을 먹고, 얼아 안 되는 양이기 때문에 금방 씨리얼을 치우고 커피를 내리기 시작한다.
커피 내리는 동안 에센스를 바른다. 에멀젼도 바르고. 커피가 대략 다 내려지면 드리퍼를 치우고(타올 소재의 손수건을 접어서 둔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아직 뜨겁다.
그렇게 커피를 마셔가면서 옷 입고 나갈 채비를 한다. 사과를 반으로 자른 것 하나와 토마토 반개를 챙긴다. 어제 우려 두었던 페퍼민트 차를 조그만 플라스틱 병에 담는다. 나갈 때 즈음이면 남은 커피를 모두 마신다. 남은 사과 반개를 입에 물고 학교로 간다.
학교에 있는 동안은 별다른 군것질은 하지 않는다. 커피는 집에서 내가 내려먹는게 더 맛있고, 허브차는 파는 동네가 없으므로 지갑도 가끔 깜빡깜빡한다. 주로 챙겨간 페퍼민트 차를 마신다. 친구들은 치약맛이라고 안 먹는데 나는 좋다. 베티나르디, 페퍼민트 큰 병이므로 여유분은 넉넉하다.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에서 8시정도까지 버티기에는 아슬아슬한 양이지만 어쩔 수 없다. 큰병은 무거운데다가 큰 병 자체가 없다. 슬프다.
점심은 토마토와 사과 싸간걸 먹는다. 차로 마무리. 친구들은 내 점심을 비웃지만(!) 괜찮다. 다이어트도 되는데다가 맛도 좋은걸. 사먹는 건 취향이 아니기 때문에 패스.
집에 있을 때에 마시는 물은 우려서 식혀둔 녹차. 생수 대신이다. 쌉쌀한 맛이 감돌면서 그냥 물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신체 말단부위는 차갑지만 속은 뜨거운 형이라서 그렇게 마셔댄다고 썩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물을 다 마시면 또 부지런히 끓여서 우려둔다. 맛있다.
평상시에는 오후 8시, 과외가 있는 날은 11시 즈음 귀가한다. 집에서 공부하다가 살짝 졸릴때, 혹은 막 집에 돌아와 쌀쌀 할 때-그리고 초큼 허기질때- 곧장 찐하게 우려낸다. 설탕은 첨가하지 않음. 쓰는 홍차는 주로 꼬르동블루의 잉글리쉬블랙퍼스트나 아마드의 얼그레이. 홍차의 카페인으로는 잠 못 이루는 밤 따위 전혀 연출할 수 없다.
밀크티는 든든하고, 배도 부르며, 적어도 잘 때까지는 깨어있을 만큼의 각성효과를 주기도 한다. 밀크티가 조금 부담스러울때는 늦게 저녁을 먹은 뒤에 과일차를 마신다. 요즘 마시는 건 트와이닝의 피치/패션프룻. 히비스커스의 효과인지 붉은 수색에 새콤한 맛, 그리고 이름 그대로 복숭아의 달콤한 향이 끝내준다.
책상에 있다가 맘이 허하면(?) 페퍼민트를 한번 우려 마신다. 다 마시고 나면 내일 챙겨갈 차로 한 번 더 우려 둔다.
잘 때가 되면 전기 포트에 남아 있는 물의 양을 점검하고, 커피를 간다. 요즘 먹는 커피는 카뮤의 콜롬비아 슈프리모. 아침에 커피를 마시지 않고 가면 하루를 말아먹으므로(아홉시 수업을 카페인 한줌 없이 견디는 건 지옥이다. 절대 깨 있을 수 없다. 이것이 오후 5시까지 여파를.... 물론 추구하고자 하는 미각에 충실한 맛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양은 10g보다 조금 더 넉넉하게 갈아 둔다. 다 갈렸으면 아침에 내려먹은, 드리퍼에 고대로 남아있는 필터와 커피를 치운다. 드리퍼를 씻고, 잠자리에 든다.
...난 지난 1학기를, 이것들 전부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없이 살았기 때문에 학점이 그렇게 안드로메다 행이었던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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